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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권태 습기를 가득 머금은 무거운 공기가 방안을 가득 채운다. 그 무게에 눌려서, 혹은 뜨거운 공기를 피해서 바닥에 납작 엎드린다. 더워서 물만 잔뜩 들이킨 뱃속, 계속 누워있어서 멍해진 머릿속, 물기로 뻑뻑해진 공기를 뚫고 탁하게 들려오는 어딘가의 차 소리, 그 사이를 날카롭게 비집고 들어오는 매미 울음 소리. 불안함일지, 초조함일지, 아니 어쩌면 아까 먹은 냉수가 탈을 일으켜서일지 모르지만 왠지 속은 불편하다. 무기력과 권태의 중간쯤에 자리잡은 자책과 뭔가 쓸모있는 일을 해야할 것 같은 강박감. 그러다가 또다시 멍-해져서 차라리 눈을 감자, 잠 들어버리자, 그렇게 의식의 끈을 늘어뜨린다. 여름이라서, 더워서 그런것뿐이야. 시리도록 매서운 겨울의 찬바람을 그리워해보다가, 왠지 봉숭아 물들인 손톱도 그리워지고,.. 더보기
고백 잔인한 것도 싫어하고 스릴러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아무리 재밌는 영화여도 한두번쯤은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곤 했었는데. 영상과 음악이 너무 좋아서 선혈이 낭자한 장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장하고 싶은 영화. 보고난 후에 우울해지지 않았던 것은 후련함 때문일수도, 영화 장면장면들이 아름다워서였을지도. 요사이 꽤나 오랜기간, 새로운 자극을 갈망하던 나의 뇌가 호강한 기분.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더보기
실패의 심리학 물리학자 보어는 전문가를 "아주 작은 영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실수를 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계속 실패하며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가를 배워가는 것이 전문가이며, 또한 빨리 배우는 사람의 특징이라는 점을 역설하는 것이다. 더보기
2012년 6월 9일 토요일 익숙한 것을 떠나는 일은 언제나 마음을 아리게 한다. 3월부터 5월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를 채워주었던 나의 프랑스어 수업이 지난 주에 폐강되어버렸다. 수강생이 너무 적기 때문.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회현점에서 강의를 들었다. 토요일 아침에 무려 아홉시에 시작하는 세시간짜리 프랑스어 강의. 내가 주말 아침에 일찍 일어나다니, 당직일도 아닌데. 강의를 들으면서 정말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2008년 여름의 스트라스부르, 94년 봄의 필립 선생님, 2003년 여름 태안과 자비에 그리고 세브린. 심지어 에르베 선생님까지! 과도와 과자료실, 면접을 기다리던 그 곳, 책장에서 꺼내 읽던 창비문고, 초롱언니, 강이 흐르던 커다란 창문 너머로 백조의 기괴한 울음소리가 들려오던 기숙사의 냄새, 그리고 나와 같은 수업을.. 더보기
테레즈 라캥 - 에밀 졸라 불문과에 대한 향수. 때론 부정하고 싶었던,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지던 날들. 오늘은 고마운, 감성으로 다가온다. 자연주의, 낭만주의, 현아의 발표, 맥주를 마시고 약간은 취한 채 들었던 봄날의 수업시간, 르와르 강변의 성들, 베르사유궁, 에르베와 세브린까지! 조금 더 집중하고 관심을 가졌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마저도, 이제는 뭉클한 그리움으로 남는다. 책 내용에 대해서 말하자면, 충분히 그럴 법한 일들. 박쥐가 이 책을 모티브 삼았구나. 물과 죽음이 내게 불러일으키는 심상 때문에 조금은 섬뜩하기도. 새로운 무언가를 기다리면서, 기대하면서, 다음 주 토요일부터는 회현으로! 더보기